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헝가리 인민공화국 (문단 편집) === 탈소 정책 === 라코시 마차시에 뒤이어 공산 정권의 수장이 된 [[너지 임레]](Nagy Imre)는 [[니키타 흐루쇼프]]의 [[이오시프 스탈린|스탈린]] 격하운동을 기회로 헝가리에 자유화를 추진하였다. [[너지 임레]] 자신이 친소파 [[공산주의자]]였음에도 불구하고, [[제2차 세계 대전]] 이래 계속된 소련의 간섭에 염증을 느끼고 헝가리의 중립화와 개방화를 추진하게 된 것이다. 사실 흐루쇼프도 임레의 개혁을 어느 정도까지는 용인하려고 했으나[* 그래서 동시기에 [[브와디스와프 고무우카]]가 집권하면서 (부분적인) 자유화 정책을 폈던 [[폴란드 인민 공화국|폴란드]]에 소련군이 침입하지 않았던 것이다. 고무우카는 외교정책 면에서는 WTO에 계속 잔류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기에 너지 임레와 다르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.] 너지가 아예 소련의 세력권을 벗어나려고 하자 애써 만들어 놓은 동유럽권이 붕괴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이의 진압을 결심하게 된다. 시민들은 이에 반발해 소련의 통제와 공산 통치 전반에 반항하여 봉기를 일으켰으니 바로 '''[[헝가리 혁명]]'''이다. 소련 정부는 이에 대한 반응으로 기갑부대를 보내어 무력으로 부다페스트를 점령해 버렸다. 시민들의 봉기는 물론 유혈진압되었다. 너지 임레는 반역 혐의로 처형되었고[* 이후 1988~89년 민주화 도중에 명예복권과 추도 및 이장식이 이루어졌다.], 결국 혁명이 실패로 돌아가자 많은 사람들이 소련군으로부터 죽지 않기 위해 헝가리를 떠났다. 이어 새로운 지도자로 소련의 비호를 받은 [[카다르 야노시]](Kádár János)가 집권하게 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